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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거장

Sand Giants 1)2)

민마타의 공무원으로 있는 원로 의원 두 명이 바닷가 쪽으로 걸어내려오고 있었다. 협상 과정은 힘들었었고 철저한 비밀 유지를 약속하면서 잠깐만이라도 바람 좀 쐬고 싶다는 청을 간곡히 했다. 마타(Matar)는 지금이 1년 중 따뜻하고 좋은 계절이어서 사람들은 틈만 나면 외출을 즐겼다. 어쨌든 정부로서는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을 좀 더 가까이할 수 있었다. 적어도 사람들을 감시하기에는 좋았다.

이 두 사람은 특히 엘브랜드 토두인(Elbrand Toduin)이라는 사람이 만드는 작품에 관심이 많았다. 엘브랜드는 모래사장에서 표현력이나 기능성이 뛰어난 복잡한 구조의 거대한 모래 성을 만들곤 한다고 했다. 적어도 이 의원들이 수습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들었던 내용으로는 그랬다. 그렇게 해서 새드레드 스바르그(Sadrede Svarg)와 아두너 훔켈랫(Aduner Hulmkelat), 이 두 사람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 이 엘브랜드를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 정부 청사는 마타에서도 특히 바닷가에 가까이 인접해 있어서 잠깐만 걸어가도 닿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마을의 상점가가 그쪽에 있었기 때문에 해안가를 따라 나란히 나있는 긴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끝 부분에 온갖 종류의 상점들이 있는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도로의 한쪽 편에 잘 정비된 인도를 따라 노점상들이 이곳저곳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인도 너머는 모래사장, 그 너머는 바다였다.

인도는 모래사장보다 높은 곳으로 나 있었다. 그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나뭇가지가 나듯 콘크리트로 만든 부두가 모래사장을 갈라 수직으로 바다를 향해 쭉 뻗어있었다. 이 부두에는 모래사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고 배를 정박시킬 수 있는 고리나 기타 장비들도 갖춰져 있었다.

어쨌든 평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햇살이 비추고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날씨여서 몇몇 사람들은 보도를 따라 한가로이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최근 인기를 끄는 종족 특유의 옷을 입은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아두너가 탐냈던 어떤 옷은 종족의 문신 모양을 흉내 내기도 했다.

두 의원은 바다를 향해 쭉 뻗은 부두 한 곳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몰린 것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은 모래사장이 낮아지기 시작하는 곳 인도 부근에 몰려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보호 난간에 손을 짚은 채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드레드는 가까이 갈 수 없었지만 아두너는 유연한 몸으로 군중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 보호 난간 건너편을 볼 수 있었다.

엄청나게 커다란 여러 모래 구조물 사이로 조그만 사람 모양의 엘브랜드가 저 멀리 아래에 서 있었다. 아두너의 시선이 모래 구조물에 고정됐고, 아두너는 기가 죽었다. 저렇게 조그마한 사람이 저런 커다란 괴물체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었다.

첫 번째 것은 그 크기가 무한대에 가깝다고 할만하면서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거인이었다. 몸체는 유명한 민마타의 사람, 상징, 표어 같은 것을 모아 만든 집합체였다. 다리에는 쿠막이 있었고, 드루파(Drupar)가 사활을 건 일격을 가했을 때 같은 편에 섰던 두 사람의 얼굴이 무릎 관절에 새겨져 있었다. 드루파의 얼굴은 거인의 몸체 한가운데에 있었다. 마치 해수면이 드러나듯 다른 부분에 들어 있는 여러 얼굴도 알아볼 수 있었다. 거인의 팔은 종교 문신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아두너가 놀라웠던 것은 그 중 일부가 증오와 전쟁에 관한 표어를 담고 있었다는 점이며 상당수는 암호 같은 그림으로 조합되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두너가 보기에 머리 위나 몸 한가운데에 메시지를 들고 있지는 않았다. 아두너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절망적으로 뒤죽박죽 흩뿌려진 분노였다. 급류에 휩싸여 경외심이라고는 남아나지 않을 비뚤어진 좌절감이었다. 아두너는 고개를 저었다. 과유불급이었다. 창조자가 그 거인을 반복해서 만드는 일을 누구도 막을 수 없었기에, 높은 파도에 그 거대한 구조물이 쓸려 내려간다는 사실을 그나마 작은 위안으로 삼았다. 좀 더 나은 것을 향한 탄생의 반복은 차가운 것을 그 무덤에 남겨둔다.

두 번째 것은 아두너가 내키지 않아 하긴 했지만 꽤 매끄럽게 생긴 것이었다. 바다뱀이었다. 육중한 머리가 모랫바닥에서 솟아올라 중력을 이겨냈고, 유연한 몸체는 반달 모양으로 가늘어지면서 자신은 물결이 굽이치듯 잘 헤엄치지 못함을 암시했다. 아두너는 뱀을 싫어했고 곧 이 작품도 싫어졌다. 바다뱀은 접착제 같은 것으로 반짝거렸다. 이렇게 커다란 게 아무 지지없이 홀로 서 있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 접착제는 바다뱀에 파충류처럼 보이게 할 것을 붙이는 용도로 쓰였다.

이 작품의 뺨에는 작은 홈이 패여 있었다. 아마 엘브랜드가 접착제를 쓰기 전에 사다리로 건드리면서 생긴 것 같았다. 바다뱀의 머리 부분은 또렷했다. 열린 주둥이 사이로 줄지어 선 이빨은 오래된 듯해져 있었고, 눈 아래에 비스듬히 보이는 핏줄이며 성난 듯한 눈썹은 물론이고, 정적인 모습과 활동적인 모습을 동시에 표현한 방법 등이 정교했다. 공격 준비 자세를 취한 것 같기도 하고 한가로이 바다를 오가는 모습 같기도 했다. 힘과 잠재력이 묻어나왔다.

그러더니 화염이 일었다. 엘브랜드는 뱀의 콧구멍 안에 있는 화염 방사기를 작동시켰고 불꽃과 희뿌연 연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이상하게도 아두너는 그 화염이 뱀을 조금씩 위협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화염은 바다뱀의 본성이나 위협성을 강조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실물과 같은 날카로움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래 구조물이 점점 더 바다뱀 같아 보이면 보일수록 아두너는 점점 더 이것이 단지 모래 구조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적어도 아두너한테는 이 바다뱀이 거북했다. 너무 실제적인 어떤 것, 특히 그 진정성이 분명히 허구에 불과한 그것은 실제 그 자체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될 수 없다.

아두너는 기분이 너무 좋지 않아 세 번째 모래 작품을 쳐다볼 생각도 접어둔 채 돌아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군중의 틈을 비집고 새드레드가 빠져나와 아두너 옆의 보호 난간에 자리를 잡았다. 새드레드가 작품을 바라봄과 동시에 아두너는 새드레드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건… 좀 안 좋네.” 새드레드가 말했다.

아두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는 이 일로 심각한 토론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곧 방향을 돌려 세 번째 작품으로 시선을 돌렸다.

첫인상은 다른 작품에 비해 다소 청명하다는 느낌이었다. 겉보기에 거의 한 덩어리에 가깝게 생긴 커다란 건축물로서 마치 석기시대의 유적지를 연상케 했다. 건물의 건축자재는 그 모양과 표면이 바윗돌을 닮았다. 각 자재는 마치 여러 작업자가 모여 만든 것처럼 그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작은 모래 삽 여러 개가 주변에 흩어진 모습이 그런 생각을 뒷받침했다.

아두너는 이 작품에 굉장히 호감이 갔지만, 그건 건물을 둘러보다가 밑동 부분에 있던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기 전까지였다. 민마타 소년의 모양을 한 모래 인형이 벽에 기댄 채 건물 앞쪽에 서 있었다. 소년의 바지는 발목 부근까지 내려왔으며, 그 얼굴은 상당히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조차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는, 거북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그 소년의 앞에는 모래로 만든 아마르인의 머리가 놓여있었다. 꼭 아마르인을 머리만 남겨둔 채 바닥에 묻은 것 같았으며 소년의 가운데 부분에서는 한줄기 하나가 분수처럼 바람을 가르며 끊임없이 솟아나와 그 아마르인의 까칠까칠하고 벗겨진 머리를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아두너는 이 모래 건물 주변에 커다란 물동이가 몇 개 놓인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만약 이 건물을 뒤쪽에서 바라보았다면 플라스틱 파이프와 금이 간 물동이 따위로 설계된 멋진 수로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이 위협적인 모습이어서 그토록 크게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첫인상에 그런 징조가 보이는 허울 좋은 구경거리에 불과한 작품은 즉흥적인 오락거리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모랫바닥에 펼쳐놓은 깔개에 동전을 몇 닢 던져대며 좋아했다.

아두너와 새드레드는 약속이나 한 듯 몸을 돌려 군중 틈을 빠져나와 부두 한가운데로 돌아왔다. 아두너는 아무나 붙잡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상대를 찾지 못했다. 새드레드는 쥐죽은 듯 조용했지만 아두너는 경험상 그건 누군가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버리고 싶을 만큼 폭발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두너가 무언가를 채 하기도 전에 새드레드는 근처에 있는 춤꾼을 향해 곧장 발길을 옮겼다. 민마타에는 훈련받은 춤꾼이 펼치는 섬세하고도 상징적인 행위에서부터, 거칠고도 폭력적이기까지 한 민마타 전사의 춤까지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전통이 있었다. 마찰력을 없앤 매트에서 자신만의 연기를 펼치고 있던 이 사람의 것은 루스테(Ruhste) 양식의 일종으로, 보통은 공연자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는 식으로 추는 과도하게 활동적인 옛 시대의 예술활동이었다. 이 춤은 아마르 점령기간 동안 전투 요원을 양산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금지당했었으며, 현재에는 정부가 비록 정식 허가를 내거나 공식적으로 후원하기를 단호히 거부하고는 있지만 문화 스포츠로서 허용되어 있다.

춤꾼은 새드레드가 가까이 다가가자 동작을 천천히 했지만 동작을 멈추지는 않았다. 매트 위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져 곡예를 펼치면서 몸의 균형을 흩트리지 않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이미 멀리서부터 아두너는 매트에 장식된 무늬가 첫 번째 모래 상에 있던 종족의 문양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전체적인 조합이 같은 주제를 나타낸다는 점이 그랬다.

춤꾼은 인사말을 시작했으나 그 소리가 너무 작아 아두너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새드레드를 보고 상황을 따라잡긴 했지만 이미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여기 이 공개 행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엉뚱한 사람들을 향한 화풀이일 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겁니다. 당신이 하는 일은 우리가 진정 나가야 할 방향과 전혀 상관도 없고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세드래드가 춤꾼을 향해 소리쳤다.

춤꾼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동작을 멈추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럼, 당신은요?”

새드레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춤꾼은 다시 춤을 계속 추며 그 나긋나긋한 몸을 놀려 무언가 내면의 리듬에 조화를 이루었다. 그 춤은 점점 속도가 붙더니 춤꾼은 바닥에서 펄쩍 뛰어올라 마치 승천하는 용처럼 손과 발을 공중으로 찌르고 있었다.

아두너는 만약 이 사람을 아무 증인이 없는 곳에서 만났더라면 이 공연은 지금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춤을 보려는 사람들이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었다. 루스테는 예술 활동이지만 미학적 관점의 폭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구경꾼은 격투기를 연상시키는 이 행위를 보게 될 것이고, 좀 더 자세히 관찰한다면 이 춤에 깔린 그 근본은 사실상 미학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폭력을 내포한 예술 활동은 자기 자신을 예술이라 표현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아두너는 이 행위에 또 다른 것이 한 겹 더 둘러싸여 있음을 짐작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폭력적인 행동을 흉내 내며 겉으로는 예술적인 행동을 하는 따위의 시도를 했다면, 그 사람은 예술 행위로 폭력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현실에서도 폭력적인 습성을 지니기 쉬운 사람이기 마련이지만, 보통 구경꾼들은 단지 그 표면적인 모습만 볼 뿐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자신의 날카로움을 세상에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은 단지 그런 모습을 가장하고 있도록 알게 하여 본 모습을 숨기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겠는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새드레드는 여전히 그 말에 화가 잔뜩 나서 발길질을 했고 아두너는 그 뒤를 따를 뿐이었다.

만약 크롬잇츠(ChromIts)를 갖고 노는 아이를 보지 못했더라면 계속 그랬을 것이다.

크롬잇츠는 민마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었다. 그 장난감은 은색으로 된 스무 개의 작은 자석 구체가 주요 부품이었고, 접이식 연필깎이 모양으로 생긴 우주 정거장 모형과 자외선을 투사할 수 있는 조그마한 직립식 영사기 등의 부속물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 자석 구체 한 쌍을 정거장 모형에 1분가량 놓아두면 곧 온도가 살짝 올라간다. 그렇게 된 후에, 그 둘을 동시에 잡고 살며시 양쪽으로 끌어당기면 구체의 표면에 있는 여러 개의 조그마한 구멍에서 비단결처럼 가느다란 실가닥이 밀려나와 둘 사이를 잇는다. 이 실가닥은 줄곧 팽팽한 장력을 유지하며 거의 무한대에 가깝도록 늘어날 수 있으며, 자외선 조명을 쬐게 되면 단단한 줄기처럼 굳어져 기다란 봉 형태의 물체로 변하게 된다.

크롬잇츠로 만들 수 있는 구조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뜨거운 것은 기존의 구조물에 차례로 하나씩 덧붙여 실가닥으로 뼈대를 만들 수 있었다. 차가운 것은 훨씬 더 어려운 것으로, 구체 한 쌍으로 된 봉 형태를 여러 개 만든 뒤 구체가 띠는 자력의 성질을 이용해 서로 달라붙게 한다. 자력을 이용한다는 말은 그다지 큰 뼈대를 만든 것이 아니더라도 사방에서 같은 압력을 가해주어야 함을 뜻한다. 왜냐하면 자력으로 버티는 구체는 아주 작은 힘만으로도 미끄러져 다른 구체들과 함께 스스로 전체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장난감 크롬잇츠를 잔뜩 가진 어린이들을 만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특히 가족 중에 기술자가 있다면 더 그러하며 그런 가족일수록 새로운 구조물이나 물건을 만드는 것이 일상적인 취미생활이다. 차가운 접합 부분이 훨씬 더 구조적이고 어려운 쪽에 속하며 일종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라면, 뜨거운 쪽은 일반 물리 법칙이나 구조 기술로부터 자유로우며 좀 더 예술성과 독창성을 가미할 수 있었다.

부둣가의 한 모퉁이에서 그 두 사람이 본 것은 조금 전에 보았던 그리스 신화의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연상시키던 춤꾼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기껏해야 일곱 살이나 여덟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어린 아이가 크롬잇츠 더미 위에 앉아 타이푼과 많이 닮은 무언가에 차가운 접합 부분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새드레드가 먼저 다가갔다.

“굉장한데! 이름이 뭐니?” 새드레드가 말했다.

“브릴드에요.” 아이가 말했다.

“이거 다 혼자서 한 거니?” 새드레드가 물었다.

“네.”

“한번 봐도 될까?”

아이가 말없이 들고 있던 것을 건넸다.

새드레드가 조심스럽게 살펴보며 말했다. “아주 잘 만들었구나. 부모님께서 자랑스러워 하실 거야. 종종 이렇게 우주선을 만드니?”

“우주선 아니에요.” 브릴드가 말했다.

“정말?” 아두너가 불쑥 끼어들었다. “놀랐는 걸. 그럼 뭐지?”

아이가 아두너를 올려다보더니 겉보기에는 일단 믿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이건 거대선체의 뼈대에요.”

두 사람의 멍한 표정에 아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 아빠는 기술자에요. 부서진 커다란 우주선을 다룰 때 제일 힘든 건 우주선이 밀접하게 움직이지 않는 거라고 항상 얘기했어요.”

“민첩한 거지.” 새드레드가 말하자, 아두너가 쉿, 다그치며 조용히 시켰다.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요, 그 폐선을 무중력 상태로 만들어야 인양이 된데요. 그런데 그게 많이 망가져 있으면 붙어 있던 게 떨어져 나가서 인양할 방법이 없데요. 그래서 우리 아빠는 우주선을 감싸 안은 뼈대 같은 이 거대선체를 만드는 거에요. 아빠가 그러는데요, 그렇게 하면 움직일 때 그 폐선을 한데 모아줘서 부서지지 않는데요. 그래서 제가 아빠를 도와주려는 거에요. 그리고 아빠가 그러는데요, 그건 크롬잇츠 비슷한 걸로 만들 수 있데요. 왜냐면요, 아빠가 그러는데요, 재료를 최대한 적게 쓰고 꼭 필요한 곳에만 써는 게 그 비결이라고 그랬거든요, 그래야 그 뼈대가 서로 딸깍 들어맞는다고 그랬어요.”

“차가운 접합으로 신형 무중력 수리용 뼈대를 만든 거로구나.” 아두너가 놀라워하며 말했다. “이거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린 거니? 몇 살이니?”

“2주일 걸렸어요. 여덟 살이요.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저 똑똑하데요.”

“똑똑하고말고. 2주일 만에 뚝딱 이런 걸 만들어 낸 여덟 살난 아이는 본 적이 없는 걸. 당장 건축기사가 돼도 되겠어.”

아이가 씨익 웃으며 모형을 달라는 뜻으로 손을 뻗었다.

새드레드가 웃으며 모형을 돌려주었다. 새드레드가 아두너에게 말했다. “이것 봐, 이런 거여야지. 전쟁도 없고, 위협도 없고, 깊은 생각이 깃든 평온한 일이잖아. 이게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아직 희망은 있어.”

아두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가 아두너의 마음에 걸렸지만 정확히 무엇이라 집어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 모래 조각가는?” 아두너가 물었다.

새드레드가 바다를 향해 크게 팔을 휘둘렀다.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 버릴 거야. 다른 걱정거리들도 다 마찬가지일 걸. 우린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돼.”

“브릴드야, 나도 그 모형을 한번 보고 싶은데, 부탁해도 될까?” 아두너가 말했다. 아이는 흔쾌히 보여주었다.

아두너는 찬찬히 모형을 살펴보며 말했다. “망가뜨리지 않을게. 약속할게. 그런데… 여기 말이야. 여기 이 접합부분. 그리고 여기, 그리고 여기. 이건 어떻게 고정한 거니? 차가운 접합 부분이 이렇게 결합할 수 있는 줄은 몰랐거든.”

아이의 미소가 살며시 옅어졌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두너가 살며시 접합 부분을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자 그 부분을 지지하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났다. 바람에 살살 나부끼며 끈적끈적하게 늘어진 섬세한 것이었다.

“이건 뜨거운 접합이구나. 접착제로 이 둘을 섞어놨구나.” 아두너가 말했다.

“아, 별로 상관없지. 그래도 얼마나 훌륭해.” 새드레드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흠, 그래. 맞는 말이야.” 아두너가 말했다.

새드레드가 호감을 표시하듯 아이의 어깨를 약간 세게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여덟 살이야. 완벽하지는 않아도 지름길로 좀 갔다고 문제 될 건 없지.”

“그러면 우리는?” 아두너가 말했다. 하지만 아두너도 그게 공평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괜찮아. 여기 있다, 브릴드야. 정말 멋진 걸 만들었구나.” 아두너가 모형을 아이에게 돌려주자 아이는 곧바로 주저앉아 다시 모형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형은 분명히 아이들 장난감이었음을 아두너도 알고 있었지만 크나큰 실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곧 그 실망감에 좌절감을 맛보았다. 자신들이 숨겨왔던 것과 환상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돌아가자.” 아두너가 말했다. 새드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정부 청사 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협상에 복귀할 시각이었다. 카린 미듈러(Karin Midular)나 극비에 찾아온 사절단이나 협상 지연에 관대할 리는 없었다.

매트 위에서는 춤꾼이 두 사람의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2)
초안 번역자 : piss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