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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니클: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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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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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있는 궁전은 부와 사치로 빛나고 있었다. 가까히 가서 보면, 이 건물은 열대 기후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르자드 항성 가까이에 위치한 스타크만 프라임 행성의 기후는 언제나 더웠는데,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로 인해 궁전의 외벽 곳곳에는 작은 균열이 생기기 일쑤였고, 게다가 사방에는 썩어가는 채소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세 명의 남자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뜰에서는 두려움과 땀의 냄새가 훨씬 더 강하게 풍겨왔다.

마당에서 뜨거운 열기에 시달리고 있는 이 세 사람의 앞에는 아디샤푸르 가문의 장남이자 황위 계승자 후보인 아르콘 아디샤푸르가 불편한 자세로 좌석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자기 앞에 있는 이 민마타 노예들을 차례대로 살펴보았지만, 열대 곤충들의 끊이지 않는 울음소리 때문에 생각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원래 이들은 폭동을 일으킨 죄로 곧 처형될 예정이었으나,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챈 아르콘은 아직까지 처벌의 집행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옆에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왕궁 비서를 향해 잠시 눈길을 돌렸다. 왕궁 비서인 드루파 마아크는 앞에 있는 노예들과 마찬가지로, 스타크마니프 부족 출신이었다. 드루파 마아크도 역시 노예이긴 했으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덕분에 아마르인 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마침내 왕궁의 공무원 직위에 오를 수 있었다. 아르콘은 한숨을 깊게 내쉰 뒤, 다시 저주받은 노예들에게 주의를 돌렸다. 이들은 반드시 처벌해야 할 대상이었다.

자신의 동료들이 고문당하는 동안, 드루파는 스스로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유지하려 애를 썼다. 그는 이 황위 계승자가 어떻게 노예들을 심문하는지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르콘은 오로지 말과 몸짓만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망가뜨릴 수 있었다. 세 명의 노예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당시, 드루파는 빠른 심문과 신속한 처벌을 소망했다. 하지만 지금 저 늙은 멍청이는 노예들을 향해 질문 공세들을 퍼부어대고 있었고, 이 광경을 바라보는 그의 내장은 한기에 휩싸였다.

“늙은 멍청이도 때로는 악마처럼 교활해진단 말이지.”

드루파가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음모도 귀신같이 알아차린단 말야.”

주인에 대한 증오와 미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의 능력에 대한 존경심도 덩달하 커졌다.

아르콘은 자신의 뚱뚱한 몸을 움직이면서 거의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홀을 만지작거렸다. 마침내 일이 조금씩 풀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졌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이들은 단지 거대한 조직의 톱니바퀴일 뿐이었다. 본 행성에 아마르 제국의 권위를 무너뜨리려는 조직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의 지도자가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배신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드루파의 심장 박동은 점점 빨라졌고, 혈액으로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이 신체의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고 있었다. 몇 년에 걸친 계획과 여기에 관련된 수백 명의 동료 노예들이 한 순간에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심문은 드루파가 마침내 직접 행동을 취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의 행동은 어떤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마치 본능에 의해 이끌려진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주인이자 원수를 향해 돌진한 드루파는 곧바로 계승자의 손에서 황금 홀을 낚아챘다. 몇 초 동안 아르콘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고, 뒤이어 홀의 날카로운 머릿부분이 주인의 목에 꽂혔다. 피가 사방에 튀었다. 혼란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계승자는,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목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제 발로 일어섰다. 그의 뚱뚱한 몸이 드루파의 앞에서 파르르 떨렸더니, 순간 은색 기계 팔이 아르콘의 예복에서 튀어나와 드루파의 목을 움켜쥐었다. 무장한 경비원들이 왕궁의 뜰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드루파는 있는 힘을 다해 아르콘의 손을 도로 벌린 뒤, 아직까지 충격에 사로잡힌 채 무릎을 꿇고 있는 노예들에게 소리쳤다.

“도망가! 시작이다! 혁명! 혁명!”

그의 외침은 죽어가는 계승자의 손이 목을 짓누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서서히 감기는 드루파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은, 세 명의 젊은이가 혼란을 틈타 도망치는 모습이었다.


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부시게 밝은 빛이 뜰을 비추고 있었다. 그로 인해 마당에는 예전과 달리 으스스한 분위기가 맴돌았고, 거기 있던 몇몇 사람들도 이와 똑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아이도니스 아르디샤푸르는 대리석 바닥에 남아 있는 핏자국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어떻게 핏자국이 사람들의 넋을 빼놓으며 각종 공포스러운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의 지휘관들 중 한 명은 도시에서 일어난 폭동이 계속해서 외부로 퍼져나가고 있으며, 얼마 뒤에서는 통제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또 다른 반대쪽에는 왕궁 경호팀장이 불안한 표정으로 아이도니스의 아버지가 사망한 것에 대해 해명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아이도니스는 이것이 용서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순간 인내심이 바닥난 그는 무뚝뚝한 얼굴로 두 사람을 내보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친구 조리악이 서 있는 장소로 걸어갔다. 조리악은 살인 무기가 된 황금 홀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문득 아이도니스는 자신의 아버지가 황제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물건에 의해 죽었다는 점을 상기하고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아마도 이에 대해서는 아침 미사 시간에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다.

조리악은 아이도니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숙였으나, 정작 그는 이를 못 본척 했다. 조리악은 아이도니스와 같은 나이에다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였는데, 정확히 말해서 미래의 황위 계승자로써는 최대한 친할 수 있을 만큼 친한 사람이었다. 다시 아이도니스는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황금 홀을 바라보았다. 한 측면에서 보자면, 이것은 제국과 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가장 거룩한 상징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서 보면, 이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흘린 피로 물들여 있었다. 이미 몇몇 폭도들은 해당 물건을 복제하여 마치 무기처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그들은 이것에 아버지를 죽인 자의 이름을 붙여 쿠막이라 불렀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아이도니스는 자신의 내장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그의 머리 속에는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그가 아버지와 함께 본 행성에 온 이유는, 이 야만인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파할 수 있겠다는 순진한 계획 때문이었다. 이제 민마타인들이 거룩한 경전을 절대 자신들의 것으로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아이도니스는 문득 마음 한 구석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최소한 민마타인들의 상스러운 손에 신의 말씀이 훼손될 가능성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순전히 빈 말이 된지 오래였다. 아이도니스는 그들의 풍부한 문화와 접촉할 수 있었고, 예전에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이 제국의 중심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민마타의 전통을 깔보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무의식적으로 그는 도시 외곽에 있는 어떤 작은 은신처, 그리고 애정의 말을 속삭이면서 사랑을 나누었던, 한 유연하고 매력적인 여성을 떠올렸다. 만약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검은색 피부와 아몬드 빛깔의 눈동자를 가졌으며, 수줍고도 대담한 미소를 짓는 스타크마니르 부족 출신의 애인에 대해 알았다면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끝났다. 이제 아이도니스는 황위 계승자가 되었다. 이미 그는 자신의 어깨에 아디샤푸르 가문의 지난 수천 세대들이 살아왔던 삶의 무게가 지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 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그의 지도력과 도움을 필요로 한다. 여기, 제국 외곽에서의 한적한 삶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흥분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경험한 그는, 마치 건물의 기초가 움직이는 것처럼 삶의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도니스는 등을 쭉 편째 앞을 노려보았다. 이러한 친구의 모습을 본 조리악은 반걸음 뒤로 물러섰고, 아이도니스는 그가 이해했음을 알아차렸다.

“다른 후계자들은 앞으로 있을 당신의 행동에 따라 당신을 판단할 것입니다.” - 조리악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새로운 후계자는 자신의 심복들과 제국의 눈 앞에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하지요.”

아이도니스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가 남기고 간 것을 깨끗하게 치워야 합니다.” - 조라크가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은 자신이 황위 계승자가 되기에 충분히 강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야만 합니다.”

“어떤 방안이 있습니까?”

아이도니스는 이미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자신의 귀로 대답을 듣고 싶었다.

“물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폭동을 제압하는 것이지요.”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 비록 내키지는 않았으나 아이도니스는 반드시 이를 말해야만 했다.

“당신이 벌써 말했듯이, 나는 다른 계승자들에게도 메세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폭동을 진압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나, 황위 계승자의 죽음을 복수하는 것은 그렇지가 않단 말입니다.”

“당신은 제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십니까?”

조리악이 물었다. “스타크마니르 부족을 섬멸해야 합니다.”

아이도니스는 여기서 잠시 말을 멈추더니, 마치 자기 안에 있는 무언가를 짓누르려 하는 것처럼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궤도 함대에 연락하세요. 행성이 자전을 완료하기 전에 모든 제국민들을 도시와 궤도에서 탈출시키라고.

이 행성은 등대처럼 환하게 타올라 아디샤푸르 가문의 힘과 우리의 의도가 지닌 신성함을 온 은하계에 알릴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 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말을 하면서 아이도니스는 친구의 눈에 안타까움이 서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물론 자신의 눈에서도 똑같은 감정이 드러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과거의 삶과 예정된 미래에 대한 슬픔, 그리고 앞으로 자신들이 하려는 행위에 대한 후회. 그는 다시 한번 더 자신의 작은 은신처와 스타크마니르 연인의 길다랗고 유연한 팔다리, 또 자신이 민마타인들에 대해 가졌던 꿈들을 상기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놓아주었다. 황위 계승자에게는 이런 사치스러운 꿈을 꿀 여유가 없다.

“곧 미사가 시작되겠군.”

이렇게 말한 그는 갑자기 휙 뒤로 돌아서더니 곧장 예배당을 향해 가버렸다.

1)
초안 번역 출처 : http://www.joysf.com/4407227
2)
초안 번역자 : 헥사크론
크로니클/쿠막.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4/07/30 20:23 저자 Muro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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