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hods of Torture - The Caldari 1)2)
그는 곡식이 잘 여문 황금빛 들판 한가운데에 누워있다. 태양은 아직 높이 뜨지 않았지만 그를 따스하게 비춘다. 작물은 여물었지만 아직 추수는 하지 않았기에, 누운 자리에서 보면 마치 밀 줄기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한 손을 들어올려 쭉 뻗는다. 그리고 다시 그 손을 낮춘다. 그러면서 시선은 저 멀리 하늘에 둔다.
단 한 번도 고통의 비명을 터뜨리지 않았다. 모든 것은 끝났다. 정말 끝이다. 잠들어 있을 때 생긴 일이었거나 아니면 다른 어딘가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건 서로 같이 알고 지낼 일이 절대 아니다.
이따금 그는 귀 뒤에 있는 상처 자국에 손을 댔다. 그들이 들어갔던 그곳.
우리의 시선을 주목시키고 또 우리를 강하게 반응시키는 그 어떤 것이 우리를 자극한다는 사실은 자연의 섭리다. 그것은 느릿느릿 천천히 다가오며 우리에겐 생각할 시간도 충분하다. 그것은 우리 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반면 우리는 그럴 수 없다. 다가오지 못하게 가로막을 수도 없으며 그저 본능에 따라 반응한다. 하지만 그 위협이 나타나는 즉시 사라져 버린다면 잠깐의 관심은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된다.
또한, 추상적인 사고와 상상력을 지닌 고등 생명체는 단순 하등 생물이 겨우 풀밭이나 기어다닐 줄 아는 데 비해 훨씬 다양한 종류의 두려움을 느낄 줄 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사고력이 통제불능 상태로 분열되며 나타나는 정신 착란 증세입니다. 장려할 만한 일입니다.
그는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먼 길을 걸어왔던 것 같지만 풀밭과 들판 사이로 한없이 헤매며 다니는 식의 기억이 아닌 꽤 편안했던 것으로 그는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그는 단지 꿈을 꾼 것이고 지금은 잠에서 깨기 직전인지도 모른다.
무거운 열매의 무게로 혼자 자라기 어려워 주위 동료가 지탱해준 채 길게 자라난 밀 줄기들은 그의 몸이 만든 허공의 공간으로 구부러져 내려갔다. 그는 밀 줄기를 때리고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힘껏 쥐어 부러뜨린다. 부러진 밀 줄기를 입 안으로 가져가 느긋하게 씹는다. 서두르지 않는다. 서두름이 전혀 없었다.
한 달 전 그는 어떤 물건을 훔쳤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충동적인 판단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어느 날 밤늦게까지 일하다 발견한 그냥 재킷에 쑤셔넣은 문서 몇 개일 뿐이었다. 그걸 무엇에 쓰려 했었는지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구체적인 목적이 있어서 그랬다기보다는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막연한 개념으로 훔쳤다. 처음에는 장물로 내다 팔 생각을 했다가 곧 그 문서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그는 아직 결정을 내리는 중이었다. 바로 그게 계속해서 문제가 됐던 점이다. 그는 그걸로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문서를 들고 있었지만 미안해했고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반역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이는 사고력이 통제불능 상태로 분열되며 나타나는 정신 착란 증세입니다. 장려할 만한 일입니다.
바늘을 비롯한 반짝이는 날카로운 물건들이 보였지만 고통은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은 흰 가운을 입고 무표정한 상아색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수술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는 종종 강제 수면을 취했다. 그는 반복되는 같은 질문을 계속 받았다.
잠시 후 눈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끈에 묶인 채 누워있었고 의사가 다이얼을 천천히 앞뒤로 돌렸다. 그 사람들을 의사라 부르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했다. 다이얼에는 아무 숫자도 쓰여있지 않았고 단지 두께가 점점 두꺼워지는 선이 다이얼의 원 둘레를 따라 둘러 있었다. 의사가 다이얼 옆에 비켜 서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다이얼이 얼마나 돌아갔는지 볼 수 있었다.
그는 반복되는 같은 질문을 계속 받았다. 그들 기준에 답이 불만족스러울 때마다 다이얼은 돌아갔다.
다이얼이 낮은 단계에 있을 때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언젠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그러니까 맨얼굴을 한 의사에게 말을 걸 것이다. 상아색 입술이 움직이고 상앗빛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으로 직접 전달된다. 그 의사는 다이얼이 돌아갔을 때만 잠시 나타나있을 뿐이다.
다이얼이 중간 단계에 있을 때 그의 눈에는 다리가 여럿 달린 작은 것이 기어오는 것이 보인다.
다이얼이 높은 단계에 있을 때는 그 어떤 것에도 모양이나 뚜렷한 색이나 형체가 없다. 그는 구체적 실체를 구분할 만한 능력이 없다. 그의 마음은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만화경에 빠진 듯 변해가고 있다.
그는 반복되는 같은 질문을 계속 받았다. 스스로 완전히 미쳤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그 질문은 계속됐다.
나비 한 마리가 줄기 옆에 내려앉는다. 그는 나비가 왜 날아들어 왔는지 궁금했다. 여기는 꽃이 없다.
나비는 빠르지만 그의 손은 더 빠르다. 그는 나비를 뭉개서 자기 옆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는 미소를 짓는다. 그는 나비를 부러워하면서 손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나비의 피가 자신의 것처럼 상상하면서, 그 역시 나비처럼 죽어가는 것을 상상하면서.
여러 사람이 그를 보러 들어왔다. 모두 의사처럼 같은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체격으로 미루어보아 보통 직원보다 어린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사 한 사람이 꺼져있던 다이얼에 손을 얹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의사가 사람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사고력이 통제불능 상태로 분열되며 나타나는 정신 착란 증세입니다. 장려할 만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의사는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가 풀려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멍하니 떠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다. 아무도 그가 무얼 했는지 알지 못했지만, 동시에 그가 불명예스러웠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물론 그는 취직도 할 수도 없었다. 청소부 같은 사람조차 명예가 땅에 떨어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 아무 친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난생처음 보는 사람조차도 그의 지위가 어떤지 한눈에 알아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의 잔고는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그 돈에 손대려 하지 않았다. 그는 매월 연금을 받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게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들었다.
생각이 맑아졌을 때 그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곰곰이 되새겨봤다. 그가 중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일어났던 일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사전에 계획된 용의주도한 범죄 행위가 아닌 일상생활을 하는 회사원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단순 범죄였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뜻한 바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그는 하나의 본보기가 되었을 뿐이다.
그의 눈 뒤에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그게 아니고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가 예전에 듣기로 그것은 사람이 지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영상을 투사하는 이용한 일종의 광고기술과 비슷하다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퀘이프(Quafe)사가 초기의 공격적 마케팅 수단 일부로 이 기술을 사용했다고 한다.
작동 방식은 사실 매우 간단했다. 이따금 그가 눈을 깜빡이면 시신경에 영상이 들어갔다. 항상 그렇지는 않고 가끔은 한 시간가량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던 것은 물론이며 심지어는 시작하는 시간이 불규칙적이기도 했다. 언제부터 시작할지 알 방법이 그에게는 사실상 없었다.
그 영상은 범죄 현장이나 사고 장면이었다. 어떻게 가볍게 스친 그것이 그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그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영상은 그가 눈을 감으면 투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장면을 완벽하게 볼 수는 없었다. 그의 내부에 장착된 장치가 눈의 깜빡임을 감지해서 정확히 영상을 전송하는 것이리라고 짐작했다.
정말 많은 피가 흘렀다. 그리고 다른 것들도.
처음 그 일이 터졌을 때 그는 포장해 들고 있던 음식을 떨어뜨렸다. 눈을 몇 번 깜빡이고 고개를 휘젓고서 음식 봉지를 주우려 몸을 구부렸다. 그가 음식 봉지를 손에 쥐자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났고 충격과 공포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매번 그런 무방비 상태에 계속해서 노출되었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매번.
세세한 내용이 바뀌기는 했지만 대체로 같은 장면이 보였다. 어떤 때는 살육의 현장 한가운데에 이빨 몇 개가 솟은 커다란 검은 입 같은 것이 보이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탁자 보에 붙은 흰색에 가까운 밝은 색 천조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의사와 그 의사의 정말 불운한 환자가 나오는 영상을 본 것이 아니었을까 궁금했다.
어느 날, 그는 예전에 알고 지냈던 한 남자와 구멍가게에서 마주쳤다. 나름의 분야에서 높이 평가받는 사람으로 예전과 변함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남자도 그를 모른 척했다. 그 역시 모른 척 지나치고는 그 남자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을 것이다. 만약 그 남자의 드문드문 떨리는 손을 보지 못했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할인 상품을 눈여겨보는 척하면서 그의 옛 친구를 흘끔 쳐다봤다. 그리고 이따금 그 남자가 눈을 깜빡일 때면 약간의 전율이 그 몸을 지나가는 것 같음을 눈치 챘다.
그가 본 것이 정말인지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 확실히 알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그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기에 이 기회가 그의 귀양살이를 유리한 상황으로 바꿔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랬다. 그는 그 친구에게 걸어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잠깐만 실례할게요.” 그리고 두 손가락으로 그 친구의 귀 뒤쪽 머리카락을 젖혔다.
상처자국이었다.
그 남자는 그대로 꼼짝하지 않고 앞을 바라봤다. 그 모습은 마치 등 뒤에서 괴물 소리를 듣고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듯했다.
그날 밤은 평소보다 유독 심하게 울었다. 그 친구가 짊어진 운명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같은 악조건을 극복하지 못한 자기 자신의 무능력함과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이는 사고력이 통제불능 상태로 분열되며 나타나는 정신 착란 증세입니다. 장려할 만한 일입니다.
치매는 이와 다른 증상입니다. 일관된 논리 추론력이 총체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 실체는 자기 감각에 의해 만들어지고 생각은 객관적 사실과 분리될 수 있습니다.
그는 한 손을 들어올려 쭉 뻗는다. 그리고 다시 그 손을 낮춘다. 그러면서 시선은 저 멀리 하늘에 둔다.
이는 사고력이 통제불능 상태로 분열되며 나타나는 정신 착란 증세입니다. 장려할 만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