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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안 번역자 : 헥사크론 | The Cult of Tetrimon |
오늘날, 테트리몬 교단은 그저 아마르인과 기타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테러 공격을 자행하는 소규모 광신 단체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뒤에는 어두운 진실이 숨겨져 있다. 교단의 기원은 21460년, “광기의 황제”라고 불리는 자라그람 아르디샤푸르 2세의 통치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아마르 황제는 단순한 사도들의 리더 역할을 맡고 있었으며, 그의 모든 권위는 사도회(The Council of Apostles)를 통하여 구현되었다. 하지만 자라그람이 황위에 오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종교적 성격의 칙령들을 내리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칙령들은 기록서의 내용과 위배되는 것이었으며, 아마르 사회의 신성한 전통들을 파괴하는 것들이었다. 또한 자라그람은 스스로를 신-황제로 승격시켰으며, 자신의 기분에 따라 제국을 통치하였다.
아르디샤푸르 가문의 한 귀족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저지르는 행위가 너무나도 큰 수치심을 느꼈으며, 결국에는 샤스탈 항성계에 위치한 “신의 도시”에 들어가 직접 황제를 암살한다. 호위병들에 의해 처형되기 직전 그는 자신의 피묻은 손을 들고 다음과 같이 외쳤다:
“아 마누 데이 에 테트리몬” - 나는 거룩한 신의 손으로써 헌신하였다. (여기서 “테트리몬”은 아마르어로 “거룩한 헌신”을 뜻한다)
아마르의 통치 기구였던 사도회는 황제의 암살 이후 권력을 되찾았으며, 기존의 신앙을 복구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해당 귀족은 성인 테트리몬으로 추앙되었으며, 사도회는 이미 사망한 자라그람 2세의 영향력을 없애기 위해 성 테트리몬의 교단을 설립한다.
본 교단은 아마르 신앙를 정화시키고 기존의 기록서들을 보존하며, 정경의 내용과 부합되지 않는 문서들을 제거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이 단체는 자라그람의 칙령을 무효화하기 위해 황제와 관련된 모든 그림들과 조각들과 이름들을 없애버렸으며, 그가 건설한 신의 도시는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다.
21875년에서 21950년까지 행해진 “도덕 개혁(Moral Reform)” 과정에서 사도회는 권력을 잃었고, 대신 황제와 새로운 창설된 추밀원이 승리하게 된다. 이제 황제는 제국의 영적 그리고 세속적 지도자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사도들의 지지자들 중 대다수는 500년 전에 있었던 광기의 황제 자라그람 2세를 상기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혔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영원한 침묵 속에 묻혀버리고 만다. 황제의 이러한 승격을 반대한 자들 중에는 테트리몬 4세가 포함되어 있는데, 현재 그는 테트리몬 교단의 그랜드 마스터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공개적으로 황제를 비난하는 대신 사도들에 대한 기록들과 유물을 비밀 장소에 숨겼다.
새로운 황제는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황제의 도덕적 권위를 드높이려는 목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종교적 지도자들을 모아 새로운 기록서 정경을 만들도록 한다. 해당 모임은 나중에 신학회(Theology Council)라는 이름은 새 종교적, 정치적 질서를 수호하는 기능을 맡게 된다. 여기에 소속된 심문관들은 제국 전체에서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활동 아래 아마르인들의 전통적인 신앙은 새로운 정치 체제에 맞추어 파괴되고 변모되었으며, 황제는 명실공히 신의 최종적이고 무오한 대변인이 된다.
성 테트리몬 교단은 그 규모가 크게 줄었으나 여전히 존속하였으며, 신학회와 추밀원과는 때때로 갈등을 빚기도 했으나 여전히 아마르 신앙과 관련된 예전의 기록서들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22762년, 제국의 분열로 인해 카니드 왕국이 설립되자 황제는 제국의 평화와 고요함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성 테트리몬 교단을 없애라는 칙령을 내린다. 칙령에 따라 테트리몬 소유의 건물들과 대학들은 지역 정부에 의해 압수되었으며, 몇몇 교단의 멤버들은 감옥에 갇히거나 추방되었다. 당시 교단의 그랜트 마스터였던 로제라 리아나는 이단으로 판정받아 담-토르사드의 신성한 도시에 격리되었다가 2년 후에 사망한다.
해당 교단은 카니드 왕국에서 활동을 계속하였는데, 왜냐하면 카니드 2세는 정치적 이유로 인해 제국의 칙령을 온전히 준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룸 및 아르디샤푸르 가문이 교단을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이 가문들은 추밀원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비난들은 무시해버릴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테트리몬 교단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고, 결국 자신들이 아마르인들의 마음과 정신을 오염시킨다고 비난하는 자들을 향해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23216년에 있었던 노예 폭동이 발생했을때 테트리몬 교단은 제국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민마타 세력을 격퇴하는데 도움을 주는 대신 자유롭게 제국을 통과할 수 있다는 내용의 협정을 하이데란 7세와 맺는다. 파일럿들의 두려움 없는 공격 행위로 인해, 테트리몬 소속의 함선들은 공화국 함대들에게 있어서 큰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이데란의 나머지 통치 기간 동안 테트리몬은 아무런 공격이나 방해를 받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현 체제를 무너뜨리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교단은 오늘날까지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채 조용히 생활하고 있지만, 코르-아조 가문, 특히 노예를 해방시킴으로써 아마르 전통을 파괴하고 자유주의적 시각을 지녔던 계승자 도리암의 경우에 대해서는 몇몇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