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주 정거장의 내부 규정에 대한 카피탄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샨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린 뒤 발로 밟았다. 이 늙은 멍청이는 지난 세월 동안 서류 작성 밖에 할 줄 모르는 연방 우주군의 오줌싸개들과 함께 지내면서 지금 주인공의 앞에 걸려 있는 해파리처럼 흐물흐물해져 버렸다. 어쨌든 간에, 오늘날의 위대하고 강력한 외인부대(Legionnaire)에게는 정거장 바닥의 얼룩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포드로 들어간 샨은 곧바로 현 상황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연합(Alliance)이 탄생한 직후, 독립 세력들 중 일부분이 점점 거대하고 잔혹한 짐승으로 변모하는 중이었으며, 따라서 커스 지역의 분위기도 예전과 많이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살비(Salvies)의 잘못이 가장 컸다 - 사실 살비의 도움 없이 커스 지역에 어떤 영향을 끼치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이 새로운 연합체가 가볍게 볼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하게 밝혀졌다. 카르텔의 전투기 중대들이 연합 우주선들에게 계속 격파되면서, 소행성대는 점점 통제를 벗어나는 중이었다.
오늘날, 몇몇 거대한 위성의 그림자 밑에 마치 쥐새끼처럼 꽁꽁 숨어있는 것들을 제외한 모든 전초기지들은 CA의 손에 넘어간 상태이다. 이제 연구 시설, 제조 공장 및 군수 창고들은 괴물을 향한 일종의 초대장이 되어버렸다. 살비는 카르텔의 닌자 광부들이 제공하는 잉여 광물들을 가지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으나, 그들이 소유한 함선과 시설들 중 대다수가 여전히 심각하게 파손된 상태에 있는 실정이다. 문득 착륙장의 스피커가 켜지더니 친숙하고 공허한 목소리가 금속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해적단 호위대, 이륙 준비 완료”
시스템 점검이 완료되자 샨은 카메라 드론을 360도 회전시켜 인터셉터의 빛나는 선체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모든 것이 정상인 듯 보였다. 순찰할 준비가 끝났다.
느릿느릿하게 열리는 착륙장의 문을 통해 항성의 빛이 곧바로 쏟아져 들어왔다. 엔젤 해적단원인 샨 아브로나크가 검은 허공을 향해 돌진하자 먼지 알갱이들이 빛의 기둥 안에서 춤을 추었다.
첫 번째 적이 모습을 나타낸 것은 비행을 시작한 지 정확히 138분이 지나고 나서였다. 순간 샨은 자신의 목 뒤에 닭살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늘 하던 버릇대로 그는 신발장에 붙여 놓은 아다쿨의 글을 되뇌이며 자신을 추스렸다.
“긴장해라, 얘들아”
카피탄의 목소리가 통신기에서 흘러나왔다.
“블랙 오메가가 두 개 있다”
이 말을 들은 샨의 온 몸에는 닭살이 돋았다. 블랙 오메가는 연합에게 속한 기업들 중 하나로써, 커스 지역과 그 주변의 작전 지대에 있는 아크엔젤 조직원들에게는 악명이 높은 단체였다. 해당 기업은 최근 두 항성계의 소행성대를 식민지화하였으며, 어떻게 그들의 군사 부대가 카르텔의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소규모의 손해만을 입은 채 본 구역들을 초토화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여기에 있다.
“동지들, 횡대 대형(Line formation)을 갖춰라”
카피탄의 목소리는 엄격하게 들렸지만, 샨은 자신의 카메라 드론을 가동시켜 외인부대의 거대한 함선들이 한 행성을 향해 회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불안감이 어둠을 뚫고 새어나와 그들의 용기를 갉아먹고 있었다. 자신의 프리깃을 다른 두 명의 해적들 사이로 끼워넣은 샨은 이제 중앙의 명령만을 기다고 있었다.
“좋다, 이제 행성 II와 VII에는 조사되지 않은 소행성대가 딱 두 개 남았다.
지금까지 그 어떤 소행성대에서도 특이사항이 보고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이 구역들을 조사할 것이다. 제타 팀은 행성 VII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여러분은 행성 II의 벨트 1번으로 워프할 것이다”
시공간이 그들의 주변으로 회전하는 터널을 형성하는 동안, 샨은 자신이 만약 외인부대에 속하게 된다면 절대로 “여러분”, “동지들”, “너희들” 같은 끔찍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이건 너무나도 유치한 단어였다. 예전의 엔젤 카르텔, 아니면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연합이 커스 지역으로 들어오기 전의 엔젤 카르텔이 지녔던 엄격함과 질서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의 머리에 떠오른 하나의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았던 두려움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영역에 암덩어리처럼 퍼져버린 이 약탈자들은 드디어 오늘 그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샨은 이러한 저주를 중얼거리며 워프 상태에서 벗어났다.
워프 엔진이 꺼지고 포드 내의 액체 제어 시스템이 함선의 감속으로 인한 움직임을 상쇄시키자, 우주선이 가볍게 흔들리면서 주인공 몸 위로 액체의 부드러운 흐름이 일어났고, 마침내 그는 자신의 바로 밑에 위치한 곡선 형태의 운석 벨트를 볼 수 있었다. 몇 초가 채 지나지 않아 샨의 스캐너에는 적군이 감지되었다.
약 80 클릭 정도 떨어진 거리에는 아포칼립스 급 전투함 두 대가 약 20 클릭의 간격을 둔 채 정지해 있었다. 목표 추적을 하기에는 너무 멀었다. 동시에 해적단원 세 명이 사전회피기동(preemptive evasive maneuver)을 하면서 카피탄의 명령을 기다렸다. 카피탄과 그의 디프리데터 호위기들이 침입자들을 포착하려 애를 쓰는 동안 소형 함선들은 앞과 뒤로 왔다갔다를 반복했고, 그렇게 무거운 몇 초가 흘러갔다.
갑자기 통신기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젠장! 날 포착했어! 이 무슨 개…”
하지만 아포카립스가 한 대가 카피탄의 함선을 향해 빛의 기둥을 발사하자 곧바로 통신기가 침묵했다. 함선의 주변으로 거대한 투명 구체가 생겨나더니 적군의 에너지 빔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이와 동시에 또 다른 레이저가 두 번째 전투함에서 발사되었고, 외인부대의 방어막이 다시 반짝거렸다. 몇 초가 지나자 에너지 빔이 점점 하나로 모이더니 마침내 카피탄의 함선에 완전히 집중되었다.
“가! 가! 돌격해!”
큰 함선에서 뚱뚱한 사람이 소리쳤다. 그의 조용한 면상은 이미 적군의 무자비한 폭격에 완전히 증발해버렸다. 이제 샨은 무능한 외인부대를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잔뜩 두려움에 몸이 굳은 채로 애프터버너를 가동시킨 뒤 저 멀리에서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빔을 발사하는 함선들을 향해 돌진했다.
50 클릭, 그 다음에 40 클릭. 문득 뒤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 해적단 동료들 중 한 명이 레이저를 맞고 두 동강이 나 금속 부품들을 허공에 뿌리고 있었다.
30 클릭. 더 이상 후퇴는 없다. 샨. 해야 할 일을 해라. 카르텔을 믿어.
25 클릭에 이르자 전투함들이 주인공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순간, 그는 모든 우주선 조종사들이 두려워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팃 팃 팃 팃 팃 …
함선이 적군에 의해 목표 포착이 되었다는 것을 센서가 감지한 것이다. 마치 대포로 잔뜩 채워진 통을 보는 것 같군…이라고 샨이 생각하던 찰나,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렸다. 또 다른 동료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침내 무기 발사거리에 다다른 엔젤 해적단원 샨 아브로낙은, 자신이 발사한 곡사포의 포탄이 적 함선에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은 채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을 보았고, 아포칼립스의 막대한 선체가 마치 금박을 입힌 뱀처럼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았다. 아주 밝은 빛이 주변을 감싸고 자신의 함선이 지옥의 황금 불덩어리로 변하기 몇 초전, 두 개의 명확한 깨달음이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오늘 죽는 쪽은 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다. 그리고, 커스 지역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